제목은 로맨스 영화라고 범위를 규정지었지만 그냥 로맨스 자체에 대한 얘기에 더 가깝다.
연애를 못하고 있건 연애를 하고 있건...하다가 깨지건...사랑이 어딨냐구 시니컬해지건 간에 상관없이 로맨스는 닿을 듯이 잡히지 않는 신기루같이 모든 연인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로맨스로 규정되는 모든 장르의 작품들은 그 모호함으로 포장되어 영원불멸의, 가슴이 뛰는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양 사람들을 취하게 하고 중독을 시켜서 어딘가에 있을 혹은 언젠가 다가올 그 모호함을 위해 현재를 소비해버리게끔 만든다.
이상하게도...수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난 뒤엔 절대 로맨스에서 가리키던 그런 이유가 아닌 이유들로 인해 결혼을 하고 결혼 후에는 배우자의 개념이 달라진다.
개개인은 객관화 되는 과정을 거쳐 존재감이 구체화된다.
가정을 관리하는 누구, 육아를 책임지는 누구, 경제를 책임지는 누구, 세상에 내가 의지해야 하는 보루...등등등...역할론의 의미가 모든 판타지를 짖눌러 버린다. 인정하든 안하든 간에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청춘들의 얘기에서 불륜과 가정사가 뒤범벅 된 드라마에서 울고웃으며 위안을 얻고 남편들은 생활의 관념이 성숙하지 않은 소녀들에게서 판타지를 찾아 헤맨다.
그렇다면 우리의 로맨스 영화들은 사기를 쳤단 말인가?
과연...로맨스의 본질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내 마음을 알아줘 유형
아주 많은 비율의 로맨스물들이 택하는 전략이다. 현실에서는 대게 자기 감정을 채우기 위해 연애전선에 뛰어들지만 상대방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질 않는다.
그래서 헤어지고 실망하고 다투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하는 로맨스물들이 내 마음을 알아줘 타입이다.
한쪽 성의 입장만 반영하게 되면...말그대로 극강의 판타지가 된다. 순정만화 세계에서 남자들은 여자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남자의 허상으로 채워지고 소년판타지에는 남자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소녀들의 허상으로 채워진하다.
조금 더 성숙된 로맨스 물들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진심을 알아서 깨우쳐 주기를 상대에게 바라는 판타지들이다. 이 감정을 현실적 문제들과 결부시키면 '신파'가 된다.
내가 바라는 모습을 상대가 계속 거부하거나 내가 스스로 거부하다가 결국 항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대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너를' 사랑한다며 끝이난다.
정말이지...현실 속에서 나의 연인은 미치도록 내 진심을 못알아주긴 한다.
훼방을 넘어서 유형
여기선 둘이 왜 사랑하는 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운명적으로 좋단다. 그래서 살짝 고개를 드는 비현실성을 달려드는 훼방꾼들로 대신한다.
태생의 비밀, 병마, 주변의 반대, 신분과 계급...그리고 시공간적 불가능까지
마치 박지성에게 올드 트래포드의 잔디밭에서 왜 그렇게 죽기살기로 뛰어댕기느냐고 안묻는 것처럼... 이 강력한 적들과 싸우다보면 왜 그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어야 하는 지의 현실감각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 이유도 불분명한 사랑이 숭고함을 뒤집어 쓴다.
대게 현실에선 그냥 포기해 버리거나 할것을...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보이는 그 자세...그 자세 자체가 판타지가 된다.
자신을 믿지 않고 뭔가 권위나 운명에 의지하고픈 생각이 누구나 들게 마련이다.
이 누더기가 사랑이었구나 유형
내 마음을 채워달라고 땡깡 부리지도 않고 어설픈 적이 등장해 애정의 게이지를 치솟게 하지도 않는다. 좀 더 자기 성찰적이다.
보통은 내 맘을 알아줘 유형의 판타지 대상이 존재하다가 그가 나에겐 맞지 않는 허상이었구나라는 걸 깨닫고 주변에 어른 거리던 현실의 누더기를 걸치며...
사실 이게 진정한 사랑이었다구...라는 핑계를 되뇌이며 끝을 맺는다.
흔히 조건을 뛰어넘는 로맨스들...여기에 포진한다.
특성 상 하이틴물부터 장년층의 불륜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단지 내 꿈이 정말 꿈일 뿐이란 걸 증명해 낸 후에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은 거겠지...
사랑이 어딨니 유형
흔치 않은 유형이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험적 레벨이 필요하기도 하다.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삭막하고
판타지는 안주하기엔 너무 쉽게 부서져버린다.
현실적 관계와 판타지 속의 관계, 그 중간 어딘가에서만 영원히 머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비극성을 깨닫는 유형의 로맨스다.
이런 류의 작품들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면 이미 가슴의 바닥을 긁어내는 공허와 상처로 뒤범벅 되어본 인생이다. 판타지 없는 로맨스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부류다.
가끔은 로맨스에 대한 막연한 희망대신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차원적 철학을 넌지시 흘리기도 하고
사랑의 갈구 뒤에 숨은 개인들의 사는 이유까지 뒤집어 놓기도 한다.
만나고 싶지 않은 현실...그러나 현실이기 때문에 비극을 넘어서는 실존을 느끼게 해준다.
그 어떤 로맨스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생을 갈구한다.
마치 소화와 에너지화 되는 과정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 보다 맛있는 향기와 먹음직 스러운 모양새가 끼니 챙겨 먹는 것에 더 효과적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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