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시리즈기사가 하나 떴다. 이제는 대세론을 넘어서 치열한 현실이 된 '이명박 당선의 이유'에 관한 한겨레의 분석기사다.
진보세력이 귀담아 들어야할 현실에 대한 경종을 노렸는 지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도덕성이 밥 먹여주냐...내 배가 불러야

이미 대선 전부터 삼삼오오 모이면 나누던 얘기들이라 그닥 새로운 시사점이 없어 보이는 듯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들이 보수화된 사고를 하게끔 만든 원인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었거나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식으로 희석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대게의 사람들은 노무현정권 심판론의 감정을 이명박의 경제실용론으로 포장한다.
정작 밥 먹여주는 것에 관한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혼란스럽다. 왜냐하면 그들도 불안의 원인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막연히 누군가 책임질 사람만이 필요했던 거다. 기사처럼 땅 사지 말래더니 땅값 올라서 손해봤다. 망할!!...이 정도의 분노가 제일 구체적인 이유다.

과연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였을까?
그들이 수많은 <...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감정의 근원은 '위기감'이다.  

지금 시대를 지배하는 가장 큰 위기감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폭발적 증가다.

IMF 이후 양산된 비정규직은 둘째치고 정규직조차 언제 잘릴 지 모른다는 위기감은사람들에게 치부에 대한 강박을 심어준다. 주식을 하던 지, 부동산에 투자를 하던 지...최소한 앞으로 먹고 살 방법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그 어디에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거기다 양극화 심화로 인해 자녀들이 경쟁에서 뒤쳐지면 끝이라는 위기감과 그걸 이용한 자본의 부채질로 사교육비 같은 생활비용은 날로 치솟아 가기만 한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었을까?
20000불 시대의 경제의 한계일까?

그러나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출발은 우리 경제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라며 IMF가 내린 제도 개혁에서 뿌리 내린 것들이 대다수다.
정확히는 '영미식 금융, 주주자본주의 제도'의 일방적 수용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 결과, 이미 여러 매체에서 지적하듯 단기적 주주수익률에 대한 집착은 장기투자기피로 장기투자기피는 고용없는 저성장으로 나타났다.
금융개혁으로 인해 금융권 역시도 장기적 기업대출보다 단기적 개인대출을 선호하고 그렇게 해서 풀린 엄청난 돈들은 주식이나 펀드 투자나 부동산 투자로 몰려 다니고 있다. 그래서 얻은 결과가 무엇인가? 정작 우리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이랄 정도로 어려웠는데 모순적이게도 주가가 2000포인트를 달성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부동산은 거품위기를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성장동력에 필요한 사회적 부가 여기저기 거품을 일으키고 다니고 만 것이다.
불행히도 아파트와 주식증서는 생산적 가치 창조는 커녕 치부와 미래에 대한 안정감조차 해결해내지 못한다.

또한 단기 실적에 대한 집착으로 노동유연성을 전가의 보도로 써먹느라 비정규직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정리해고의 위기가 상시 도사리고 있다. 덕분에 노조는 노조대로 목소리가 연일 커지고 사용자는 이런 제도적 문제는 도외시하고 강성노조 탓만 줄기차게 늘어놓느라 노사는 연일 바람 잘 날 없다.

여기에 참여정부는 문제해결을 더욱 가열찬 신자유주의 도입으로 해결하려고만 했다.
그런데...우리에게 이 극악무도한 처방을 내린 IMF나 신자유주의 모두 영국과 미국의 엘리트들 사고인데 과연 영국과 미국의 경제적 가치가 성공하고 있는가?

오히려 영미 자본주의의 견제를 당하면서도 내실있는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은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 그리고 사회주의적 복지를 바탕으로한 북구 유럽의 국가들이었다는 점이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들에게도 분명 위기가 있었고 성장의 한계에서 주춤했지만 영국처럼 무너지지 않았고 미국처럼 달러패권과 군사력 없이도 나름의 처지와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견실한 경제를 이끌어왔다.

그런 관점에서 여기 의미있는 비평을 담은 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내용을 하나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버블경제 이후 미국식 제도로 무장했던 소니는 삼성의 추격에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종신고용과 일본식 경영으로 무장한 도요타는 미국기업들을 밀어내고 있다.
그들의 해결방식은 사회적 타협과 안전망 관리, 집단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줄기찬 노력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한 자들을 위한 논리를 대중을 살릴 묘수로 내놓고 있고
경쟁에서 도태되는 대다수에 대한 안전망 없이 경쟁 자체만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도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존의 상위원칙은 배타적 자유주의로 포장된 논리들에 떠밀려 가고 있다.
우리는 영미식 제도 수입해서 경제가 흔들리면서 오히려 더욱 영미식 개혁에 답이 있다고 집착하는 꼴이 되버리고 있다.우리가 전세계적 금융패러다임을 잡고 있거나 미국처럼 위압적인 군사력을 보유한다면 또 모르겠다.

문제의 출발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이고 해결책은 '그래도 CEO해본 이명박'이기 이전에 정확한 진단과 문제의식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이러다 또 시간지나면 '이게 다 땅박이 때문이다'식의 자조만 늘어놓지나 않을지 두렵다.
도덕성이 밥먹여 주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정치세력만 갈아논다고 넋놓고 있다고 밥먹여 주지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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