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후반에 80년대를 거친 감성으로 일제시대 예술가들에 대한 재발굴이 붐을 이루었다. 교과서에 오로지 식민지 지식인의 무기력과 저항, 아니면 순수예술만으로 정의되던 스팩트럼에 백석과 같은 이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90년대를 사는 386세대의 정서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세련됨과 의연함'이 그 동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또는...당시의 예술을 일률해석하는 풍토에 대한 저항감 정도?

여기에 문제적 시인 이상이 빠질 수 없었다.
이상 시의 난해함은 해석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했다고나 할까...

당시 인상적이었던 두 극단의 접근이 있었다.

하나는 철저한 음모론적 상상력으로 풀어해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일제의 통치 비밀에 접근할 수 있던 엘리트지만 그걸 직접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처지의 울분을 천재적인 표현력으로 작품 속에 코드화 해냈다...

라는 대단히 그럴듯한 추측의 나래를 편 이 소설은 곧 영화화 되서 기대를 받기도 했는데...결국은 그 기대만큼의 아쉬움만 남기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  
선배교수의 친일행적을 문제시 했다가 재임용 탄락해서 이슈가 되었던 서울대 미대의 김민수 교수...
그는 97년에 부터 일련의 논문으로 이상 시의 접근에 시각예술을 응용해서 화제가 됐다.

이상의 시어를 너무 문학적 텍스트로 해석하려고 해 난해함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회화,그래픽이나 건축 같은 시각적 텍스트로 접근해야 보다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로 요약된다.
그 전에도 이상의 회화적 재능을 찾아낸 연구들이 있었지만 대체로 문학이론가들이었고...전문 시각예술을 전공한 입장에서의 그의 연구는 상당히 신선했다.

시 해석이야 개인의 자유고 어떤 주관적인 해석이 절대화 될 수 없지만...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될 지 난감하기만 했던 그의 시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최소한의 렌즈를 발견한 듯한 기분...그런 느낌이다.

다다이즘을 기반으로 한 그의 논문을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그의 주장과 이상 스스로도 회화에 관심이 많았고 건축이라는 공학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한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가졌다는 점들을 적극 해석하면 기본적으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기초는 '백화점 풍경'이 맞겠다는 생각이다.

백화점 풍경에도 두 견해가 있다.
하나는 일본 동경의 미쓰코시 백화점 본점을 보고 쓴거다.
아니다. 경성의 미쓰코시 백화점(현재의 신세계 백화점 본관)을 보고 쓴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경 미쓰코시                                          경성 미쓰코시

그가 시를 발표한 것은 23살이던 1932년, 20살에 총독부에 취직해 계속 근무하던 시점이다. 그 사이에 일본을 갔었는 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찾기 힘들지만 못가리란 법도 없다. 그리고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이 문을 연건 1930년...당시로는 최고의 서양식 근대적 유통기관의 등장이었으니 그 이질감이 꾀나 이슈가 되었겠다는 점에서 역시 유효하다.

두 견해를 가르는 가장 큰 쟁점은 2행이다.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의난원

보통 에스컬레이터의 작동원리를 묘사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경성 미쓰코시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없었고 현재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동경 미쓰코시이며 그것을 보고 느꼈을 법한 문화적 충격에 시작의 동인을 찾기도 하는데...

동경을 갔었는지...동경 미쓰코시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는 지 확인할 길이 없어 이 부분은 일단 재끼고...정말 단순하게 풍경의 묘사라는 가정으로 시를 보면...


<백화점 입구부터 옥상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동선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미지는 당시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 모습이다. 출처는 신세계닷컴등에서...설마 이 정도로 저작권 문제 삼지는 않겠지...>

Au Magasin De Nouveatutes
현대식 백화점이라는 뜻의 불어인 이 부제에서 보통 가장 큰 혐의를 찾는다.

사각형의내부에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백화점의 다다이즘(?)적 공간 묘사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글쎄 에스컬레이터 같기도 하고...계속 공간적 묘사

비누가통과하는일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깔끔한 모던함으로 무장한 쇼핑객들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백화점의 성격을 뜻하기도 하고 백화점 내부의 세부적 풍경일 수도...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특이한 혹은 특이하게 진열된 백화점 상품과 그 상품명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낯선 백화점 상품이거나 깔끔한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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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평행사변형이란 단어 때문에 미쓰코시 경성점(신세계 본점을 보면 평행사변형과 흡사한 모습)이라고 한다. 역시 백화점의 구조적 감상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맞이한동양의가을
유럽에서 건너온 코티 향수가 낯선 동양에서 향기를 풍기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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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백호.회충양약이라고씌어져있다
Z백호는 독일의 제펠린 비행선이고 그 모형에 회충양약이라는 상표가 붙은 채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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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호화이동수단 제펠린 비행선

옥상정원,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모아젤
당시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엔 옥상티룸이 있었다. 거기서 우아떨고 있는 아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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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낙체공식
정서적 의미일 수도 있고 역시 구조저긴 묘사일 수도...

시계문자반에Xll에내리워진일개의침수된황혼
장식용 거대 시계 문자에 드리워진 무언가의 풍경

도어-의내부에도어-의내부의조롱의내부의카나리아의내부의감살문호의내부의인사
창살과 겹겹의 문으로 된 구식 에리베이터 풍경으로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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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의문깐에방금도달한자웅과같은붕우가헤어진다
레스토랑에 앞에서 헤어지는 다정해보이는 사람들...동성애에 대한 강력한 코드가 되기도

파랑잉크가엎질러진각설탕이삼륜차에적하(積荷)된다
공간적 묘사인듯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기구를질구하는조화분연
역시 마찬가지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네서올라간사람은 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통해 우루루 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다다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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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아는애련한후에애련하느나)
사람들의 모습

사각이난케이스가걷기시작이다(소름이끼치는일이다)
승강기? 그런데 소름끼친다는 점에서 모호하다.

라지에이터의근방에서승천하는굳바이
라지에이터에서 올라오는 김이 잘가라고 배웅하는 듯 하다.

바깥은우중.발광어류의군집이동
밖에는 비가 내려 우중충한데 그 사이를 헤드라이트를 킨 자동차들, 혹은 백화점의 모던한 손님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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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으로 봐야한다라기 보다는...
너무 파편적이고 모호한 해석보다야 이런 기본적 공간감 위에서 그 이상의 깊이 찾는 게 더 그럴 듯 해보이지 않나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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